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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구조기술사 도전기/뒷담화

공학용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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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7. 10.)



일천구백구십육년에 대학 입학을 하니 공대생에게는 공학용계산기가 반드시 필요하고 졸업할때까지 계속 사용하므로 기왕 살때 좋은걸로 하나 구입해야 한다는 조교의 권유로 당시 최신형으로 이름을 날리던 샤프의 EL-9300을 과에서 동기들이 공동구매로 7만5천원인가 주고 샀던 기억이 난다.


계산기라고 하면 숫자버튼이 큰 속칭 '슈퍼마켓 계산기'나 떠올릴 엄마에게 공학용 계산기란 생소하기 이를데 없었고(나조차도 생소했으니) 그게 7만 5천원씩이나 한다는건 돈을 대주는 엄마 입장으로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


아무튼 당시로서는 거금을 주고 산 나의 공학용계산기는 만10년이 지난 오늘날에까지도 사용하고 있으니 본전은 뽑았다고 말할수는 있지만 이제는 단종이되어 인터넷에서 그 이미지조차 구하기도 어려울정도의 귀한 모델이 되어버렸다.





검색엔진을 모두 뒤져 찾아낸 유일한 전신사진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웹페이지도 아닌 외국의 한 웹페이지에서 겨우 발견했다.



기술사를 공부하면서도 계속 9300과 함께 해왔는데 '매트릭스 구조해석'을 하면서 상당한 불편을 느꼈다. 일례로 A라는 행렬(3×4)과 B라는 행렬(4×5)의 곱을 계산해서 나온 새로운 행렬(3×5)을 또다른 계산에 적용하려면 나온 결과치를 바로 저장하는 기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결과를 연습장에 적어서 다시 C라는 행렬로 입력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입력하는 과정에서의 오류발생 가능성이 다분한 것이다.


또하나 불편한 점은 연립방정식 풀이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매트릭스의 역행렬 기능을 사용하면 가능하긴 하나 2원 1차나, 3원 1차 연립방정식을 매트릭스로 변환하여 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귀찮은 작업이다.


마지막으로 이건 좀 단순하긴 하지만 입력오차가 상당히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내가 누르는 속도를 계산기가 따라오지 못하고 뒤늦게 뜨거나 아님 아예 인식조차 못해서 두번세번 확인하면서 계산을 해야하니 성질 급한놈 제풀에 쓰러지게 만드는 답답함이 있다.

 


공학용계산기의 메모리 기능을 이용해 기사시험을 치루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에 속하는데 산업인력공단에서도 그 폐해를 방지하고자 연초에 야심차게 내놓은 대안이 있었다. 메모리가 큰 기종의 시험장 반입을 아예 차단하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물론 기사시험정도의 수준이라면 일반 공학용 계산기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자격증이라는 중차대한(?) 거사를 자신의 손에 익은 것이 아닌 생소한 계산기를 사용해야 하니 그 결과 수험생들의 불평과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내가 사용하는 9300도 발표된 살생부(?)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때 급하게 알아보고 G마켓에서 6천원주고(배송비 착불) 새롭게 구입한 놈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이거다.



 


샤프 El-531VH인데 가격대비 성능이 상당히 우수하다. 메모리는 없을지언정 이거 하나면 대학 4년은 거뜬히 졸업하고도 남을만하다. 이 놈을 보니 9300을 산게 너무도 아까울 정도였다. 당시에 인터넷이란게 없을 시절이니 때를 잘못만난 탓이지...

 


최근에 공부하면서,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과 학원강사의 말을 통해 느끼는건 1분 1초가 아쉬운 기술사 시험에서 성능좋은 계산기가 당락을 좌우할만큼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물론 연초에 산업인력공단에서 지참 금지 계산기를 발표했지만 수험생들의 반발이 워낙 거세게 일어 시험 감독관이 리셋만 하고 반입금지까지는 안하는 선에서 마무리 되어 기존의 계산기를 가지고 갈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래서 며칠전 지른놈이 이놈이다.


 


 

네티즌들의 가장 많은 추천으로 그 명성이 입증된 샤프의 EL-9900 이다. 내가 위에서 말한 9300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그보다 몇단계 업그레이드된 기능을 지니고 있다. 현재 시세는 6~7만원선에서 거래되고 있으나 어떤사람이 군입대로 쓰지않게 되어 옥션에 내놓은 중고를 5만원에 인수했다.


닭을 잡는데 소잡는 칼을 쓸 필요는 없지만 소를 잡는데 닭잡는 칼을 쓰면 그만큼 백정의 손발이 고생하는 법이다. 원래 불필요한 소비를 즐기지 않는 편이라 9900을 구입함에 앞서 상당한 고민을 했으나 그래도 나의 기술사 합격에 조금이라도 일조를 한다면 그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다는 판단에 결국 지름신을 강림시켰다.


아직 많은 사용을 안해본지라 확언은 어렵지만 비쥬얼적인 면이나 기능면에서는 확실히 9300보다 우수함을 많이 가진 놈이라 판단된다.


어찌되었건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더이상 무기탓을 하지 못할 상황이 되었으니 남은건 장수의 실력을 쌓은 일 밖에는 없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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