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의 꿈>이라는 노래에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노래 가사처럼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은 각지고 모난 것보다 둥글고 원형이 더 많은 반면, 인위적으로 만든 것들은 온통 네모난 것들 뿐이다. 굳이 이유를 따지자면 둥근 것보다 네모난 것이 훨씬 만들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토목공학과 학부시절 배우는 구조역학에 등장하는 구조물은 직선(보) 형태나, 직선으로 이루어진 다각형(라멘) 형태가 대부분인데 유일하게 곡선 형태가 하나 등장하니 바로 아치(Arch)다. 아치의 해석은 중요한 챕터의 하나로 반드시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아치보다 복잡한 곡면으로 이루어진 쉘(Shell) 구조는 해석이 훨씬 어려워 학부가 아닌 대학원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
보(Beam)나 라멘(Rahmen) 구조와 비교하면 아치의 해석은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특히 부정정 아치의 내력이나 처짐을 구하는 것은 삼각함수와 미적분을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류는 왜 해석도 단순하고 제작도 편한 직선 형태를 놔두고 굳이 복잡한 곡선 형태(아치)를 만들게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아치 구조물을 단지 학부 커리큘럼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피동적으로 배웠고, 토목기사와 토목구조기술사를 준비하면서 시험에 자주 나오니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공부를 했는데 시간이 흘러 이제 뭔가 살짝 알 것 같은 수준이 되니 아치 구조물을 볼때마다 조형적으로나 구조적으로 특별함이 느껴진다.
예전에 토목구조기술사를 공부할 때 가장 많이 회독한 자료가 lupin66님이 만드신 희대의 명저 <매트릭스 구조해석 노트>였다. 이 책 2장의 한 챕터 주제가 '대칭과 역대칭'인데 대칭 구조의 예시로 올려진 프랑스에 있는 가르교(Pont du Gard) 아치의 모습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어서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지 하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작년에 스페인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스페인으로 결정한 것은 우리 세식구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했는데 우선 아들은 무엇보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경기를 직관하고 싶어했고, 집사람은 플라멩코 공연을 가장 보고 싶어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연히 알게된 세고비아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가르교와 유사한 수도교를 보는 것을 1픽으로 정해 각자 원하는 것들을 여행 코스에 넣었다.
세고비아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로 서기 1세기 로마시대 만들어진 수도교가 남아있어 유명해진 관광지이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가르교는 275m이고 이와 유사한 세고비아 수도교는 794m로 훨씬 더 길다. (높이는 가르교가 49m, 세고비아 수도교가 28m로 가르교가 더 높다)
세계사에 문외한이라 로마제국의 역사는 잘 모르지만 당시 프랑스나 스페인 모두 로마의 영토에 속해 있었으니 당연히 같은 기술로 지어졌을 것이다. 굳이 로마제국의 역사와 영토를 들먹이지 않아도 두 수도교의 모습을 보면 같은 기술이 적용되었음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여행 전 사진과 유튜브로 세고비아 수도교의 모습을 보긴 했지만 직접 가서 본 수도교의 모습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무려 2천년 전에 이런 거대하고 아름다운 석조 구조물을 쌓았다는게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수도교의 건설 목적이 17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이 곳 세고비아까지 물을 끌어오기 위함(그래서 이름이 수도교)이었다니 당시 로마제국에는 이미 고도로 발달된 측량 기술과 축조 기술, 그리고 석공 기술이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로마의 유산이 수천년 풍파를 겪으면서도 그 원형이 완벽하게 보존된 것은 돌이라는 재료적 특성 뿐 아니라, 한치의 오차없이 정교하게 돌을 다듬어 블럭을 조립하듯 끼워맞춰 안정적인 구조물을 만든 기술력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나 콘크리트 같은 재료는 미는 힘인 압축력에 엄청나게 강하지만 당기는 힘인 인장력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개발된 것이 콘크리트 속에 인장력에 강한 철근을 넣어 압축력과 인장력 모두로부터 저항하는 철근콘크리트다. 굳지 않은 콘크리트(레미콘)는 양생기간을 통해 철근과 결합하며 단단해지지만, 원래부터 단단한 돌은 철근과 결합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시의 로마제국 기술자들은 돌의 압축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으로 아치를 도입했을 것이다.

위 그림과 같이 반지름이 R인 반원형 아치의 크라운(Crown)에 수직하중(P)이 작용하는 경우 지점에는 이에 저항하는 수직반력(Va, Vb)이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구조물은 하중을 받을때 평형상태를 유지하지 위해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내력(저항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수직하중만 구조물에 작용할 경우 지점에는 수직반력(Va, Vb)만 생기는 것이 당연하고, 수평반력(Ha, Hb)은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구조물에서 이 물리학적 원리가 적용되지만 예외적으로 아치에서는 수평반력(Ha, Hb)도 발생한다. (라멘 구조물 등에서도 발생하지만 설명이 복잡하니 논외로 치겠음) 수평반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아치리브(Arch Rib)에 휨모멘트라는 부재력이 발생하게 되어 이를 지점의 수직반력(Va, Vb) 만으로 평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여 구조물이 안정하기 위해 수평반력(Ha, Hb)이 발생하는 것이다.(힘의 평형조건)
따라서 아치 구조물에 수직하중이 작용하는 경우 지점부에 수평반력이 발생한다. 또한 지점부의 수평반력으로 인해 아치리브에는 압축력이 발생하게 된다.(이것이 아치 구조물을 이해하는 핵심)
로마제국 당시 돌을 가공해 아치를 만드는 것보다 직선의 보를 만드는 것이 훨씬 간단했겠지만 직선보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휨모멘트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장력으로 직선보는 깨져나갔을 것이고(앞서 설명한 대로 돌과 콘크리트는 인장력에 취약하다) 이에 대한 고민의 결과 아이러니 하게도 해석과 시공이 더 어려운 아치를 고안해 낸 것이다.
문제는 돌로 아치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한번에 아치를 만드는 것은 어려우니 여러 조각으로 잘게 쪼개고 이를 결합하는 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각각의 조각은 위쪽이 넓고 아랫쪽이 좁아지는 역사다리꼴의 쐐기 모양을 사용하면 가공도 편리하고, 와인병의 코르크 마개처럼 위에서 아무리 큰 힘이 가해져도 무너지지 않고 쐐기작용으로 인해 더 단단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또한 아치 구조의 특성상 압축력만 작용하고 인장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돌이라는 재료의 장점을 완벽하게 살리되 단점은 발생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기원전부터 이런 아치 구조물이 유행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Arch'라는 단어는 활을 뜻하는 라틴어 'Arc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효자종목인 양궁은 영어로 'Archery'라고 쓰는데 모두 같은 어근에서 파생된 단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활의 모양은 반원형이고 양 끝단에 시위를 건뒤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겨 발사하는 방식이다.

양궁이나 앞서 이야기한 수도교(아치 구조물)나 근본적으로 그 원리는 동일하다. 다만 아치 구조물은 중력방향으로 작용하는 하중을 수직력과 수평력으로 저항하는 것이고, 양궁은 활(아치)에 걸린 시위(수평력)를 사람의 팔힘(수직반력)으로 당겼다가 놓으면서 아치의 탄성력으로 화살을 발사(수직하중)하는 원리로 서로 정반대의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아치 구조물 중에서 특별하게 양궁의 활시위와 같은 역할을 하는 타이(Tie)가 결합된 형태가 있는데 이를 '타이드 아치(Tied Arch)'라고 부른다. 이때 타이에는 인장력(수평력)만 작용하고 원래 아치 지점에 발생하는 수평반력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임을 감안하면 전쟁 무기로 활과 화살을 먼저 개발했고, 그 원리에서 착안해 아치 구조물을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앞서 설명했듯이 물리학적으로 모든 하중(힘)은 동일 축선상에서 반대 방향으로만 저항(상쇄)이 가능하고, 직교하는 경우 저항(상쇄)가 불가능하다. 다만 오직 아치 형태만이 반원 형상을 이용해 서로 직교하는 하중을 완벽하게, 그리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항(상쇄)할 수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수학자들은 오일러의 항등식을 꼽는다. '항등식'이기 때문에 말그대로 언제나 성립하는 식인데 이 증명은 유튜브로 몇 번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음에도 불구하고 30% 정도만 이해한 것 같다. 그런데 이 공식이 아름다운 이유는 나같은 비전공자가 볼때는 식이 간단해서 라는 단순한 생각이겠지만 수학자들은 미적분을 대표하는 e와 복소수를 대표하는 i, 그리고 기하학을 대표하는 π가 하나의 식에서 조화를 이루는 것에 감탄한다고 한다.

앞서 설명한 반원형 아치의 수평반력을 구하면 위와 같은 결과가 나온다.(계산과정 생략) 수직하중만 존재하는 구조물에 수직반력 말고 수평반력이 생긴다는 것도 신기한데 수평반력의 값이 P/π 라니 오일러의 항등식에 대한 기시감이 드는건 단순히 기분탓이 아닐게다. 게다가 반지름의 크기와 무관하게 항상 수직하중에만 비례하는 값이 나온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다. 계산해보면 수직반력(P/2 = 0.5P) 보다 약간 작은 값(P/π = 0.318P)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토목공학에서 오일러의 항등식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아치라는 생각이 든다. 직교하여 평형이 될 수 없는 수직하중과 수평반력이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모양으로 상쇄될 수 있는지 보면 볼수록 너무나도 신기하다. 또한 이러한 아치의 비밀을 인류가 기원전부터 알고 있었고 수천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나라 건축물에도 이 석조 아치를 적용한 사례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경주 불국사의 백운교가 그것이다. 불국사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년) 김대성이 착공하여 혜공왕 10년(774년) 완성한 사찰이니 비록 로마제국의 수도교보다 몇백년 늦고 규모도 작지만 그 원리와 아름다움 만큼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로마제국의 공학기술이 통일신라까지 전파된 것인지 아니면 통일신라의 기술자들이 스스로 깨우친 것인지 알 도리가 없으나 당시 사람들이 아치의 원리와 석재의 재료적 특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아름다움과 문화적 가치를 현대에도 인정받아 프랑스 가르교나 스페인 수도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우리나라 백운교는 국보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공주에 있는 백제 무령왕릉 내부 또한 벽돌로 쌓은 아치 구조가 있어 삼국시대 한반도에는 아치를 만드는 기술이 이미 보편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석재 아치로 만들어진 교량은 한자로 '홍예(虹霓)'라고 표현하는데 '무지개 모양(아치형태)' 다리를 뜻한다. 모두 무지개(아치) 위에 작용하는 하중을 저항(아치 위로 통과하는 다리)하기 때문에 '상로식(上路式)'이며 보강형과 아치 사이가 돌로 채워진 '충복식(充腹式)'이다.




미학에서 비례와 조화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비례는 사물의 각 부분과 전체의 크기나 양의 관계를 의미하고, 조화는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고 아름답게 보이는 상태를 말한다. 아치는 1축 대칭 구조로 비례와 조화를 모두 갖춘 형태라 할 수 있다.
인간공학에서는 인간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비례를 추구하며 이것이 시각적 편안함과 조화를 이끈다고 한다. 인류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전부터 아치에 끌리고 여전히 그 형상을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의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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