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다녀온 호주 시드니의 하버 브릿지 이야기를 좀 해보고자 한다. 호주 여행을 계획했을 때, 아니 그 이전부터 막연히 '호주'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코알라나 캥거루 같은 동물과 오페라 하우스가 전부였다. 하버 브릿지도 언젠가 들어본 기억은 있지만 단지 그 이름 외에는 정확히 어떤 모양이고 형식인지 모른채 방문을 했다.
전세계인 누구라도 호주에서 시드니를 방문한다면 당연히 오페라 하우스를 가장 먼저 찾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그런데 막상 시드니에 가서 받은 인상은 어딜가도 하버 브릿지라 시드니 랜드마크는 오페라 하우스보다 하버 브릿지가 아닐까라는 확신에 이르렀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오페라 하우스도 위대한 건축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시드니의 관광명소 중 특별히 전망이 좋다고 해서 '포인트'라는 이름을 붙인 지명이 있는데 밀러스 포인트(Millers Point), 도스 포인트(Dawes Point), 맥쿼리부인 포인트(Mrs Macquaries Point),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 베넬롱 포인트(Bennelong Point) 등 주요 포인트는 모두 하버 브릿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 맛집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틀동안 구석구석 하버 브릿지를 관찰하며 느낀 것들을 기록해 보겠다.


ㅇ 사용재료에 따른 분류: 강재를 사용한 강교
ㅇ 구조형식에 따른 분류: 아치교
ㅇ 노면의 위치에 따른 분류: 노면이 아치 리브의 중간에 설치되는 중로식 아치교
ㅇ 가설 위치에 따른 분류: 해상교량
아치형 교량으로 아치리브(Arch Rib)가 단일구조가 아닌 이중구조이며, 두개의 아치리브가 트러스(Truss)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일반적으로 사장교나 현수교에만 있는 주탑이 아치 양단에 석재 구조물로 설치되어 상징성을 부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ㅇ 아치리브 형식에 따른 분류: Braced Rib 아치교

하버 브릿지는 왕복 6차로의 도로와 도시철도가 통과하며 양쪽에 인도가 있다. 도로는 가변차선으로 통행량에 따라 상하행선을 분리하고 중간 한 차로는 버스 전용차선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도 런닝의 열풍이 불어서인지 인도에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ㅇ 사용 용도에 따른 분류: 공용교(도로교 + 철도교 + 보도교)
교량으로 올라가보니 측면에서 보던 것과 달리 총 4개의 주탑이 있었는데 시드니 남부 서큘러키(Circular Quay) 쪽 주탑에 작은 박물관을 겸한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박물관이 유료로 운영되어 하버 브릿지를 걷는 모든 사람이 방문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장대교량 건설 후 기념관 같은 곳을 운영하는 데가 있는데 교량과 떨어진 주변 지역에 별도의 건물을 지어 운영하지 이렇게 교량 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은 보지 못했다.
15년전 일본 간사이 여행 시 아카시해협대교(明石海峽大橋)에 갔을 때 교량에 박물관과 투명유리로 된 교량 일부 구간을 걸어갈 수 있도록 체험 시설을 한 것을 보고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여기도 마찬가지 였다.

사장교나 현수교의 주탑은 우리말로 구분없이 부르지만 영어로는 사장교 주탑은 Pylon, 현수교 주탑은 Tower로 구분하여 부른다. 하버 브릿지 박물관 입구에 'Pylon'이라 쓰여있어서 혼자 사장교 계열 주탑인가? 라고 생각을 했다. 주탑의 높이는 89m 이다,

주탑 내부로 올라가는 계단참 벽에 씌여진 문구인데 이게 하버 브릿지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백여년 전 당시의 기술력으로 이렇게 거대한 토목 구조물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고 모험이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 종사한 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얻어낸 결과물인 것이다.
BTS(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 이라는 노래의 작사가가 혹시 하버 브릿지에 왔다가 영감을 얻어서 곡을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계단을 올라가다 진짜 사람인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건설 당시를 재연해 놓은 밀랍인형 이었다. 피와 땀과 두려움을 이겨낸 노동자의 모습.

안전에 대한 개념이 지금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시절이었으니 안전대는 커녕 안전모나 제대로된 보호장구를 갖추지 못한채 크레인에 맨몸으로 매달린 노동자는 어쩌면 그 것을 당연히 여겼을 수도 있었겠으나 당시의 노동자가 느꼈을 두려움은 현재의 나로서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피, 땀, 그리고 두려움의 현장에서 국적을 떠나 후배 토목인으로 선배님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1923년에 착공하여 9년여의 공사 끝에 1932년 개통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으로 봐도 몇년은 족히 소요될 대규모 프로젝트를 그 당시 어떻게 수행할 수 있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영어로 된 설명자료라 내용을 100%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치의 반단면씩 양쪽에서 조립하여 크라운(Crown, 탑정부)에서 최종적으로 접합하는 역사적 순간의 사진을 설명한 것이다. FCM(Free Cantilever Method) 공법 교량의 키 세그먼트(Key Segment) 시공과 같이 양쪽에서 건설한 구조물이 만나 일체화되는 구간은 지금도 교량 시공단계에서 가장 긴장이 되는 순간의 하나이다. 제작이나 측량 오차로 인해 접합부가 어긋날 가능성도 있고, 일체화로 인해 구조계가 받는 응력이 순간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체 공사의 성패가 결정되는 순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설명을 보니 아치 크라운(탑정부)을 약 25cm의 중앙핀으로 연결했다라는 뜻 같다.

마침 도시철도가 지나가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다. 호주의 도시철도는 특이하게 2층으로 되어 있고 의자가 가운데 통로를 사이에 두고 3열씩 2줄이 배치되어 서있는 공간보다 앉아서 가는 공간이 훨씬 많다. 마치 우리나라 고속철도처럼 말이다.

주탑 꼭대기에는 아치리브를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자세히 보면 오른쪽 아치리브를 떼지어 올라가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크라운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익스트림 체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3~4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해야 여행 일정에 맞춰 볼 수 있다고 한다.
ㅇ 아치리브의 구조: 수직형(평행현) 방식

수직재는 아치리브와 상판에 각각 강결되어 있다. 참고로 최상단 크라운(탑정부)에는 호주 국기와 원주민기가 각각 걸려있다. 원주민기가 걸린 이유는 영국 제국주의 시절 원주민을 내쫓은 무자비한 침탈에 대한 사과와 존중의 의미라고 한다.
ㅇ 수직재 연결 형식에 따른 분류: Lohse교

하버 브릿지 말고 오페라 하우스도 다양한 각도에서 봤는데, 개인적으로 하버 브릿지 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 오페라 하우스는 쉘(Shell) 구조로 이루어진 근대 건축의 백미다. 어떻게 이런 곳에 저런 건축물을 계획했는지. 그리고 이 두개의 토목, 건축 구조물로 인해 세계적 랜드마크가 생기고 그것이 관광명소가 되어 한 나라를 먹여살리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시드니 북부 해변 지역과 남부 서큘러키 지역의 주탑부 하단에 각각 아치의 지점부가 있는데 동그란 힌지가 명확하게 보인다. 박물관에서 확인한 크라운(탑정부) 핀 연결까지 총 3개의 힌지로 연결된 아치교 임을 알 수 있었다. 참고로 서큘러키 지역의 지점부는 보수공사로 인해 비계와 가시설을 설치한 상태였다.
ㅇ 구조계에 따른 분류: 3힌지 아치(정정)
왜 3힌지 아치였을까 라고 생각해보니 100여년 전 당시의 기술력으로 부정정 아치의 구조를 계산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에 3힌지의 정정 아치로 하여 구조 계산을 쉽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또한 아치교에 불필요한 주탑을 굳이 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상징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라기엔 뭔가 지금과 같이 경관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아닌데 라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으나 그래도 뭔가 있을 것이다라는 찜찜함이 남았다가 교량 하부에 와서 보니 어느정도 의문이 풀렸다.
교량 하부로 굉장히 많은, 그리고 큰 배들이 수시로 운항을 한다. 당연히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통항하기 위해 형하공간이 높아야 하는데 이로 인해 주변 지대보다 훨신 높게 교량이 건설되어야 하고, 일반적으로 아치는 축방향력에 의해 아치리브에 발생하는 휨모멘트를 감소시키는 구조이므로 지점부의 수평 반력이 커야 한다.
따라서 지점부 수평 반력을 키우기 위해 석재로 커다란 주탑을 만들어 일종의 중력식 옹벽과 같이 주탑의 자중으로 수평력에 저항하는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 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편으로 100여년 넘는 공용기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계와 시공이 얼마나 잘 되었나 하는 것이 증명되었지만, 설계당시 기술력과 지금의 기술력이 가장 많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내풍설계(설계 당시에는 내풍설계에 대한 개념도 없던 시절)라고 한다면 내풍에 상대적으로 안정한 강구조와 트러스 형태로 설계한 것이 신의 한수가 아니었나 싶다.

개인적으로 맥쿼리부인 포인트에서 바라본 하버 브릿지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 아마도 오페라 하우스와 나란히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




강재(鋼材), 즉 철이라는 재료는 뭔가 터프하고 강인함을 상징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야생성을 지닌 재료랄까? 특히 트러스 교량은 재료와 모양에서 강인한 남성성의 끝판왕이라 생각해왔다. 반면 아치는 그 원곡선의 유려함과 조화와 비례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여성성을 대변하는 형태라 생각한다.
강재 트러스와 아치라는, 뭔가 어울릴 수 없는 양 극단이 만나 이뤄낸 뜻밖의(?) 조화는 토목 구조물도 하나의 예술로 승화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을 방문할 많은 사람이 그 증거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부족한 내 글과 사진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위대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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