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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영광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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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거나 혹은 어느 시점(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가정을 자주 하게 된다. 그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전제이기에 의미없는 가정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기에 하게되는 가정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언제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냐는 질문을 받게되면 대부분 자신의 젊은 시절이나 리즈시절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경향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심화되는데, 새삼스러운 질문을 다시금 떠올리는건 얼마전 본 예능프로그램 때문이다.

 

운동선수 출신이었거나 혹은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선수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부상전 완벽한 몸상태였을때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었고, 남들이 생각하기에 최고의 전성기라고 생각하는 그 시절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그 전성기의 영광을 누리겠다가 아니라, 그 시절로 돌아가 더 잘하고 싶어서라는 대답이 의외였다.

 

그 장면을 보며 나에게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언제인지 스스로 반문하게 되었다. 입시지옥을 벗어난 대학교 입학시점? 아니면 육체적으로 가장 건강했던 군 제대후? 달콤했던 연애 초기? 결혼과 출산? 등등

 

어느 것 하나 되돌아가고 싶은 시점은 딱히 없다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건 나름 행복했던 그 시절들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불가능하지만)그 때로 돌아간다면 뭔가 짧았던 행복의 순간 그 이후에 나에게 찾아왔던 삶의 새옹지마 같은 순간들 때문에 망설여졌다는 것이 정확한 답일 것같다.

 

 

나름 남들에 비해 인생의 주어진 시간들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과거가, 내 현재가, 그리고 불투명한 내 미래가 여전히 못마땅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이 많이 있다. 그렇다고 일부 잘못된 과거를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자위하는 수 밖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큰 틀에서 같은 가치관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같은 인간이겠으나 어제의 나로 인해 오늘의 내가 존재하고, 오늘의 내 노력들로 인해 미래의 내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운명 공동체라는 형용모순의 상황에서 어차피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니 그걸 인정하고 순응할 것이냐,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가능성을 붙들고 새롭게 개척할 것이냐. 뻔한 질문으로 시작된 생각의 확대가 너무 멀리까지 와버렸다.

 

 

그래. 내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다.

 

 

사족 : 슬램덩크 만화책을 예전에 대충 보긴 했는데 심취해서 본게 아니라 그런지 강백호의 질문만 기억나고 윗 짤은 전혀 기억에 없는데 우연히 생각나 검색해보니 지금 내 심정과(물론 경우가 많이 다르지만)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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