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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아빠의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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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라떼는(?) 고등학교 때 영어는 성문, 수학은 정석이라고 할 정도로 공부를 하든 안하든 학생이라면 일단 구입은 해서 한권씩 가지고 있는 필독서였다.

 

그중에서 공부를 좀 하는 친구라면 영어는 성문 기본영어를 넘어 종합영어를 봤고, 수학은 정석 기본수학이 아닌 실력수학을 봤던 기억이 있다.

 

나는 영어를 성문영어로 하지 않고 맨투맨으로 해서 디테일한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물론 성문영어도 구입은 했다) 정석은 일반수학(고1 과정) 1권과 수2(고2~3 과정) 상하 2권 이렇게 총 3권이 있었고 교과과정 개편때마다 겉 표지의 색깔이 바뀌었다.

 

대부분 학생들은 일반수학의 경우 집합과 명제, 수2는 행렬정도까지 공부하다가 포기하거나 손을 떼는데 그래서인지 두꺼운 정석책을 옆에서 보면 앞부분만 살짝 손때가 타고 뒷부분(정답 부분)도 살짝 손때가 타는게 일반적인 패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이자 반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녀석의 집에 놀러갔던 적이 있다. 특별할 것이 없는 친구의 방에서 유독 내눈에 띈 책이 하나 있었는데 다름아닌 '수학의 정석' 이었다.

 

그 당시엔 기본수학은 노란색, 실력수학은 푸른색 표지였는데 책꽂이에 꽂힌 수학의 정석은 노란색도, 푸른색도 아닌 붉은색 계열이었다. 이 정석은 왜 색깔이 이렇게 다르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그 책이 본인의 아버지가 고등학교때 공부했던 책이라며 보여줬다.

 

책을 꺼내서 보니 60년대(정확한 연도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석이었고, 책의 글씨나 그림은 지금과 달랐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한 그 정석 책이었다.

 

뭔가 신선한 충격이랄까. 그때부터 막연하게나마 나중에 나도 내가 공부했던 책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수2 상하권(오른쪽 두권)은 내책이라 낡았는데 일반수학(맨 좌측)은 내껀 잃어버리고 지인껄 나중에 얻어서 책 상태가 양호하다.

 

 

세월이 흐르고 몇번의 이사를 다녔고 수차례 여러가지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했지만 여전히 내 책장 한켠에 꽂혀있는 그시절 유물(?)은 고등학교때 내가 공부했던 수학관련 책과 직접 정리한 노트들이다.

 

다른 과목은 몰라도 수학만큼은 정석책 맨 앞부터 맨 뒤까지 모든 문제를 빼놓지 않고 다 푸는 방식으로 고등학교때 내내 4 사이클 정도 돌렸고, 대학에 간 이후에도 과외를 하느라 2 사이클 이상 돌렸으니 총 6 사이클 이상 돌려봤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인지 손때도 골고루 묻어있고 표지는 없어진지 오래고 책도 많이 낡았다.

 

 

위에 두권이 수2 상하이고, 맨밑이 일반수학. 옆면에 때탄것이 확연하게 비교된다.

 

책 뒷면의 출판년도를 확인해보니 1993년이다.

 

 

낡은 정리노트와 내용

 

 

그래서인지 지금도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십년이 지났지만 한두달의 시간만 준다면 그 책과 노트로 복기해서 수능을 다시 볼 수 있을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마치 자전거를 한번 배우면 시간이 흘러도 몸이 기억하는 것처럼 수학이라는 학문도 여전히 내 몸이 기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아들이 중학생이라 이 책을 물려주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아빠가 오래전 공부했던 책이니 비록 그 책으로 공부는 안할지언정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말하며 물려줄 셈이다. 이런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어제가 수능일이었고 인터넷에 출제문제가 올라온 것을 보니 옛생각이 나서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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