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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토목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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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전공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토목공학 전공자들은 대학교 시절부터 세부전공을 가지고 '토목의 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쟁아닌 논쟁을 한다.

 

'부먹 vs 찍먹' 혹은 '민초 vs 반민초'와 같은 가장 대표적인 논쟁이 '구조(構造) vs 토질(土質)'이다. 대학교 1학년때부터 대학원 선배들을 중심으로 토목의 꽃은 구조다 혹은 토질이다라는 주제에 각자 자신의 세부전공을 가지고 자신만의 논리로 토목공학의 적자(嫡子)임을 자처하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어왔다.

 

나야 뭐 가방끈 짧은 학부출신에 불과해 세부전공이 존재하지 않지만 개인적인 의견으로 토목을 대표하는 구조물은 예전부터 교량이라 생각해왔고 그렇기 때문에 토목의 꽃은 구조라 여겨왔다.

 

구조분야의 대표격인 교량, 즉 다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무엇인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단절된 것을 잇는다는 것에서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대개 바다 또는 하천과 같이 주변이 드넓은 곳에 홀로 우뚝서 있어 상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반면 토질분야의 대표인 터널이라고 하면 어두움, 암흑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고 구조물 자체가 토사에 매몰되어 있는 상태라 일부 단면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전체를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물론 교량과 마찬가지로 단절된 것을 이어주지만 그 역할과 다른 이미지로 각인되어 억울한 면이 크다.

 

 

 

 

이달 초 충남 보령시 대천항에서 원산도를 잇는 국내 최장 보령해저터널의 개통에 맞춰 현장 견학을 할 기회가 있었다. 견학이라고 해봐야 홍보관을 둘러보고 국도77호선 해저터널 6,927m 전 구간을 차량으로 달리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말이다.

 

말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 달리는 차 안에서, 그것도 천편일률적인 어두운 단면의 터널구간을 계속해서 몇분간 주행하는 것으로 NATM 공법을 확인하거나 터널의 심도를 체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홍보관 자료를 통해 그렇구나 라고만 간접적으로 느낄 뿐이었다.

 

 

 

 

며칠전 집근처 준공이 임박한 도로터널을 혼자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정확한 사업개요를 확인하고 간 것이 아니라 그저 감으로만 느낄 뿐이었는데 대략 연장이 2~300m 정도이고, 차선은 2차로에 보행자통로가 있는 병렬터널(왕복4차로) 현장이었다.

 

터널을 차량이 아닌 걸어가면서 천천히 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고 그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본 것도 처음이었다. 물론 관련분야 지식이 짧아 아는게 별로 없었지만 터널 아치를 이루는 콘크리트 라이닝의 거대한 세그먼트는 교량과 모양만 다를뿐 본질적으로 다를게 없어보였다.

 

터널이라고 하면 말이 토질분야지 실제로는 구조물이기 때문에 토질분야 단독으로 완성될 수 있는게 아니었다. 토질을 메인으로 구조와 도로, 측량과 시공 등등 토목공학 모든 분야의 서포트가 있어야만 최종 구조물이 완성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교량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마치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다 이룬것 같지만 알고 보면 저 혼자 큰 것이 아니라 모두의 관심과 배려속에 성장한 것이다. 토목공학에 저 혼자 우뚝 솟은 뿔은 애시당초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조화와 균형을 이룰때 아름다운 것처럼 각각의 세부 전공이 제 역할을 다할때 토목 구조물이 빛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문득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떠올랐다.

토목, 너를 자세히 알아야 너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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