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3.)
반성없는 역사에는 미래가 없다고 했던가. 프로 바둑기사들은 대국후 승패를 떠나 반드시 복기의 과정을 거친다고 들었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프로야구에서도 최근 경기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전력분석이 점점 주목을 받고 있는데 결국 전력분석이란 바둑과 마찬가지로 공 하나하나의 승부와 결과에 대한 일종의 복기가 아닌가 싶다.
지난 몇년동안 내가 토목구조기술사를 공부한 과정을 잠시 되돌아보니 무작정 앞만보고 걸어온(달리지 않았음) 시간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의 취약한 부분이 무엇이고 무엇을 보강해야 하는지에 대한 반성없이 교재만 반복해서 기계적으로 푸는 연습을 했으니 비슷한 유형에 또 실수하고 시험후 후회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말이 쉽지만 한번의 시험에 결과와 관계없이 일희일비하지 않고 언제나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을 다 쏟아내고 그래도 부족하다면 어쩔수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제부터 매시험후 나름의 복기를 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겠다고 판단, 이번 93회 시험부터 계산문제를 위주로 내 풀이에 대한 복기를 하려고 한다.
호랑이 없는 굴엔 여우가 왕이라고 했던가. 마침 블로그 이웃중 구조해석에 대한 엄청난 포스를 자랑하는 lupin66님께서 해외출장으로 인해 시험도 못보고 블로그 새글도 뜸한 관계로 그간 남의 답안만 무조건적으로 답습하던 내 자신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포스팅을 해야겠다. (어차피 블로그는 개인공간이니 뭐 어때?)
누군가에게 내 풀이를 보여 가르쳐준다는 차원이 아니라 문제점을 분석하는 쪽으로 할 생각인데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누구든지 피드백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문 바둑 기사에 대해 늘 이해할 수 없던 것은, 어떻게 단 한 수의 착오도 없이 복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복기란 바둑이 끝난 뒤 양 대국자가 서로의 잘잘못을 되짚어보기 위해 방금 둔 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되풀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전문 기사들은 250~300여 개에 이르는 많은 돌의 순서를 정확하게 기억하면서 복기합니다.
한 바둑 전문인을 만났을 때 궁금증을 털어놓았습니다. 그의 대답은 의미 있는 돌을 놓으면 누구든 복기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바둑알을 그곳에 두는지 의미를 생각하면서 두면 복기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복기는 단순히 돌을 둔 순서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돌이 지닌 의미를 연결하는 작업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때까지 돌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바둑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의미 있는 돌만 살아남는다는 것, 이것은 바둑판에만 국한된 법칙이 아닙니다. 인생이란 거대한 바둑판이요, 우리가 사는 매일매일은 바둑판 위에 두는 돌과 같기에, 얼마나 살았느냐에 상관없이 결국엔 의미를 지닌 날만 살아남은 것입니다.
- 이재철, 요한과 더불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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