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2.)
어제 아침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혼자 조조로 건축학개론을 보고왔다. 96년을 배경으로 그려진 것과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나는 좋은 영화라는 추천평을 들어서 보게되었다.
우선 96년은 영화속 주인공인 승민이 대학에 입학하여 서연을 만나는 해이면서 동시에 내가 대학에 입학한 해이기에 시대적 배경에 대한 공감이 누구보다 컸다. 그 당시는 '삐삐'가 확산되면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본격적으로 넘어가는 시기였고(나의 대학입학 선물이 삐삐였음) 대학내에서는 '데모'로 일컬어지는 학생운동이 소위 연세대 사태와 함께 종말을 고한 과도기적 단계였다.
사실 고등학교때 대학의 전공을 선택하면서부터 건축공학과에 대한 남다른 로망이 있었다. 건축공학과의 입시 커트라인이 높기도 했었고 비교적 유사한 전공 커리큘럼을 갖고 있는 토목공학과에 들어갔기에 그런 생각을 더했지만 토목은 노가다의 이미지가 강해 여학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고 건축은 디자인의 이미지가 강해 공대치고는 여학생이 많았던게 주된 이유였던 것 같다.
당시엔 캐드가 보편화되기 전이어서 직접 수작업으로 하는 제도를 하던 시절이라 까맣고 동그란 도면통을 캠퍼스에서 어깨에 메고 다니는 건축과 애들을 보면 그게 어찌나 간지가 나고 뭔가 있어 보이던지...
여지껏 80년대 혹은 그 이전을 시대배경으로 한 영화는 많았지만 9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한 영화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필름카메라, 잔스포츠 가방, 무스, 가운데 가르마, CDP, 전람회 기억의 습작, 마로니에 칵테일 사랑, 015B 신인류의 사랑, 떡볶이 코트, PC 통신 등등 영화속에 등장하는 디테일이나 배경음악도 그 시절을 같은 나이에 직접 경험한 나에게 더욱 강한 의미로 다가왔던 것도 사실이고.
영화의 주인공인 승민이와 서연이의 첫사랑에 대한 에피소드를 제외하고 마치 그 시절의 내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 그 언저리쯤 어딘가 풋풋했던 20대 초반의 감성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낸 아련하고도 순수했던 사랑의 감정이 떠올라 영화를 보고 나온 이후 그 감동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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