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9.)
몇년전 알게된 김규항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에 대한 호칭을 정확히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신문 칼럼에 표기된 대로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이라는 것이 아마 공식적인 호칭일게다. 호칭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그는 몇년전 한겨레에서 실시한 정치성향에 대한 자가분석 결과 발표된 인사들 중 가장 자유적이면서도 가장 좌파적 성향을 가진것으로 평가된 인물이다.
여러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신학대학을 나와 기독교와 관련된 강연도 하고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에 칼럼도 기고하고 앞서 말한대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간행물의 발행인이기도 하고 요즘은 좀 뜸한데 정치적 사안이 있을때마다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쓰는데 그 필력이 상당하다. 그의 글을 읽으면 참 가슴이 쓰리고 불편하지만 그 논리와 의견을 부정할 수 없다. 그 불편함은 아마도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이면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전 그의 블로그에서 본 글 중 뒷통수를 강하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문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도 내 트위터의 프로필 서명으로 사용할 만큼 그 인상이 강렬했다.
"보수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고 진보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넣는다. 보수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 학생이기를 소망하고 진보 부모는 아이가 의식 있는 일류대 학생이 되길 소망한다."
나는 몇년전까지 사실 위에서 말한 진보 부모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김규항이라는 사람을 알게되고 그의 글을 읽으면서 또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를 어떻게 기르는 것이 더 나은 길인가에 대한 고민을 했고 새로운 가치판단을 하게되었다.
다행히 교육에 관한한 나보다 훨씬 더 김규항적 마인드를 갖고 있던 집사람과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오랜 상의 끝에 내린 결론은 김규항이 제시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기르자는 것이었다.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신자유주의적 교육만큼을 반대하며,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별도의 학원 공부나 과외를 시키지 않으며,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대학도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기로 말이다.
내가 어린시절만 해도 보통 해가지기 시작할 무렵인 저녁 6시경 동네에서 부모에게 소재가 파악되는 아이는 몸이 아파 집에 있는 아이 뿐이었고 대부분 동네 어귀에서 뛰어놀기 바빴다. 그러다 엄마가 저녁밥 먹으라고 불러야만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곤 했지만 지금은 당장 아이가 한두시간만 소재파악이 안되면 경찰에 신고할 정도로 난리가 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아이의 사회적 역할은 김규항이 말한대로 '노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공부'임에도 이젠 동네에서 무리지어 뛰어노는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남들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방과후 학원을 여러군데 전전하며 부모로부터 초등학생, 아니 그 이전부터 공부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도대체 일류대학이 뭐고 공부가 뭐길래.
도올 김용옥 교수는 어린시절부터 형제지간의 성적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자신의 호를 어린시절의 별명인 '돌대가리'를 줄인 '도올'이라 붙였지만 그를 따라다닌 학벌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대만대 석사, 동경대 석사, 하버드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모교 교수로 부임해 한 말은 그렇게 동경하고 대단한 것으로만 여겼던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막상 본인이 직접 공부를 해보니 "좆도 아니더라."(내 표현이 아니고 도올 선생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라고 하며 한국사회의 뿌리깊은 엘리티즘은 엘리티즘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교육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혹자는 말한다. 아직 내가 세상을 모르고 아이가 어려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리고 간혹 취지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실천하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 결정한 생각을 주변에서 어떤 바람이 불더라도 변치말자고 마음을 다잡아본다. 아울러 뒤늦게라도 나의 생각과 가치관에 변화를 가져다 준 김규항 님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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