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4.)
추사 김정희가 7살 때 입춘첩을 써서 대문에 붙였었는데 때마침 좌의정 채제공이 문 앞을 지나다가 그 입춘첩의 예사롭지 않음을 보고 누가 쓴 것인지 알기위해 일부러 추사의 집에 들렀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에 채제공과 김정희 집안은 서로 당파가 달라 적대적인 관계였으므로 채제공이 추사의 집에 발걸음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채제공이 입춘첩을 7살짜리 김정희가 썼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그의 아버지 김노경에게 "이 아이는 명필로 이름을 떨치겠으나, 글씨를 잘 쓰면 명이 기구하겠으니 글씨를 그만 둘 것이며 만일 문장으로 세상을 울리면 반드시 화를 입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훗날 추사는 당파싸움에 휘말려 계속되는 유배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였으니 채제공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녔다고 하겠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가 초등학교 3, 4학년때 쯤의 일이다. 그날도 오늘과 같은 입춘이었다. TV에서 입춘입네 어쩌네 하면서 어느 시골집 대문에 '입춘대길(入春大吉)'이라고 써붙여 놓은 장면이 나온것을 보고 필(feel)을 받아 미술 준비물인 도화지와 붓펜을 가지고 나도 '입춘대길'을 일필휘지로(?) 써갈겼다.
붓펜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모나미에서 나온 싸인펜 + 붓의 장점을 딴, 당시에 천원인가 천 오백원인가 하는 고가의 펜이었다. 아버지가 제사때 지방(紙榜) 쓸 때 주로 사용하는 것이어서 나는 쓰면 펜촉이 망가진다고 못쓰게 하던 그런 물건이었다.
아무튼 입춘첩을 써놓고 보니 붙이긴 붙여야 겠는데 당시에 우리집이 아파트라 주택같은 대문이 아니다보니 뽀대(?)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달리 붙일곳이 없어서 대문 밖에 스카치 테이프로 떡하니 붙여놨었는데 밖에 나갔다 오신 엄마가 그걸 보고 내가 쓴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만 신통하다면서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밖에 붙여놓으면 누가 가져갈지 모른다고 대문 안쪽에 붙여놓고 한달정도 떼지도 않고 붙였던 기억이 난다.
어린애가 괴발개발로 쓴 입춘첩을 누가 가져가랴 마는 당시엔 엄마의 말마따나 누가 가져갈까봐 대문 안에 붙여놓은 엄마를 옳다고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웃긴다.
뭐 그렇다고 내가 추사선생과 동급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고 그냥 입춘을 맞이해서 옛 생각이 나길래 끄적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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