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1.)
글을 쓰기 전에 먼저 밝힐것은 나는 인천태생은 아니지만 3살때부터 지금까지 인천에서 살고있고 인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과거 인천 야구와 현재 SK 와이번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의 팬이라는 사실이다.
다른팀 팬들은 잘 모르겠지만 오래된 인천 야구팬들의 가슴 한켠에는 남모를 상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삼미 - 청보 - 태평양 - 현대로 이어져온 인천야구의 계보를 서울입성이라는 명목하에 현대가 야반도주하듯 하루아침에 연고지 인천을 버리고 도망가버린 전대미문의 사건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인천 팬들이 그때 야구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야구판을 떠났고 야구를 멀리했다. 때마침 모기업 부도로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규합하여 2000년 새롭게 창단한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여 둥지를 틀었으나 한번 떠난 팬들의 관심은 SK에게 냉담하기만 했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SK와이번스 갤러리>
그렇게 늦은 창단과 이미 등돌려 버린 팬이라는 이중고를 안고 비인기팀으로 뚜렷한 성적을 내지못하던 SK와이번스는 2007년 김성근 감독의 부임과 함께 우승을 이뤄냈다. 유명한 스타플레이어 없이 고만고만한 선수들로 정상으로 이끌었으나 모난 돌이 정맞는건지 이때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버려 벌떼야구라는 비난을 받기 시작한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유이한 팀. 4번 진출한 한국시리즈에서 세번을 우승하고 한번을 준우승한 명실공히 2000년대 최강의 왕조를 건설한 SK 와이번스. 집나갔던 며느리가 가을 전어 굽는 냄새를 맡고 돌어오듯 야구장을 떠났던 올드팬들도 하나둘씩 다시 야구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했고 이젠 어린 팬들과 여성팬들까지 가세, 올시즌 100만에 육박하는 관중을 동원하며 명문 구단의 반열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2010년도 한국시리즈가 SK의 4:0 완승으로 다소 싱겁게 끝나며 마무리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SK를 싫어하는 일부 야구팬들은 SK가 잘하는 것은 인정하지만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고 폄하하며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몇몇 개념있는 신문기사도 있지만 여전히 각종 야구게시판은 논쟁이 활발하다. 과연 얼마나 많은 타팀팬이 이글을 볼것이며 또 공감해 줄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인천 야구팬으로 SK 와이번스를 위한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고자 한다.
1. SK야구는 재미가 없어 성적이 좋아도 관중이 적다.
과연 어떤 야구가 재미있는 야구냐고 묻고싶다. 이겼다 싶은 경기를 인간적(?)으로 실수도 좀 하고 안이한 플레이를 해서 역전패 당하는게 재미있는 야구인가. 아니면 지고 있던 경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악착같이 따라붙어 역전승 하는 경기가 재미있는 야구인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는 야구가 본인에게 재미있는 야구다. 당연히 타팀팬 입장에서 보자면 자기네 팀의 상대전적이 딸리는 SK의 야구는 재미가 없을수 밖에 없다.
롯데팬들은 관중수가 최고인것을 자랑하지만 그것도 로이스터 감독의 부임이후 3년연속 가을야구를 맛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재미있는 야구를 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롯데의 암흑기로 대변되는 '비밀번호 8888577' 당시 2002년 10월 19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와 한화의 경기는 고작 69명의 관중만 입장해 역대 최소 관중수 2위에 해당하는 진기록을 낳았는데 왜 그때도 야구열기에 관한한 둘째라면 서러울 롯데 사직구장에 관중수가 그것밖에 되지 않았는지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출처 : 디시인사이드 국내야구 갤러리>
SK 팬의 입장에서는 SK의 야구가 너무 재미있는데 왜 타팀팬들이 재미있고 없고를 논하는지 알수가 없다. SK 야구가 최근 몇년간 관중수가 폭발적으로 급증하고 창단 당시와 비교하면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고도 남을만큼 인데 재미가 없는 야구의 관중이 창단시보다 10배 이상 증가한 유일한 구단이라는건 논리적으로 모순이 아닐런지. 관중수가 성적에 비례한다는 것은 상식중의 상식이며 결국 성적이 우수한 팀으로 관중이 몰린다는 것은 이기는 팀의 경기가 재미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SK 와이번스 역대관중 현황(자료출처 : 한국야구위원회)>
2. SK야구는 일본식 야구다.
특별한 작전지시 없이 경기를 선수에게 맡기고 플레이하는 메이저리그 스타일의 빅볼이 아닌 번트와 같은 작전야구를 구사하는 스몰볼이라는 점에서 일본식 야구라고 한다. 하지만 2009년 팀홈런 및 팀타율 1위라는 기록은 스몰볼도 빅볼도 아닌 '토털야구'임을 입증했다. 일본에서 선수 및 지도자 생활을 했던 후쿠하라 전 SK 수비코치가 OBS에서 방영된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했다. "SK의 야구는 일본 야구와도 다르며 미국 메이저리그와도 다르다. SK의 야구는 SK의 야구일 뿐이다."
김성근 감독이 재일교포 출신이고 SK 와이번스에 일본인 코치가 많다는 이유로 한국인 코치의 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우려하며 일본 야구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8개 구단 중 가장 많은 한국인 코치를 보유하고 있는 구단 또한 SK라는 사실은 왜 간과하는지 모르겠다. 아울러 일본인 코치가 한국에 들어오는게 나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찬호나 추신수, 그리고 이승엽 등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다고 주장해서는 안될 것이며 같은 논리로 해당국가 출신 선수들의 설자리를 뺏고 있는데 왜 우리나라 선수들의 해외진출에 대해서 강력히 반대하지 않느냐 묻고싶다.
<2007년 2월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김성근 감독과 일본인 코치들(출처 : 스포츠춘추)>
3. 이기고 있어도 투수교체를 하고, 도루를 하고, 번트를 댄다.
흔히 불문율이라는 것을 들이대며 점수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리드하는 팀은 투수교체를 하면 안되고 도루도 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 불문율은 누가 만들어 낸것인지 궁금하다. 관용구처럼 자주 쓰이는 '야구는 9회말 2아웃 이후부터'나 '끝날때까지 끝난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표현은 야구(스포츠)에서 드물긴 하지만 역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며 그만큼 이기고 있는 팀은 방심하지 말아야 하며, 또 지고 있는 팀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경기에 임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말일 것이다.
승리가 목적인 프로스포츠에서 완벽한 승리를 하기 위한 노력을, 성문화되어 있지도 않은 불문율이라는 정체불명의 모호한 잣대로 평가한다는 것이야 말로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말이 아닐런지. 불문율을 주장하려면 차라리 크게 지고 있는 팀은 어차피 질 경기 안타를 쳐서도 안되고 무조건 헛스윙 삼구삼진을 당해 빨리 경기를 끝내는 불문율도 만들자고 주장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의 자식에게 스포츠 정신이란 지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안될것 같다 싶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충하다 끝내는 것이라고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
<공을 손에 쥐고 있는 김성근 감독(출처 : 뉴시스)>
4. SK야구는 프로야구가 아닌 고교야구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이 모인 리그경기에서, 더구나 한해 팀별로 133게임을 치르는 레이스에서 프로야구팀을 이기고 정상을 차지한 팀이 고교야구라면 그 고교야구에게 4년째 번번히 당하는 나머지 구단의 야구는 중학야구일까 아니면 초등야구일까. 그도 아니면 천하무적 야구단이 등장하는 사회인 야구일까.
그리고 벌떼야구라 비난하던 팀들은 왜 불펜을 강화하여 선발진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하게 하며, 지옥훈련이 화두가 되고 너도나도 특타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부정하겠지만 어찌보면 최근 몇년간 한국야구의 트랜드를 이끌어온 것이 바로 SK이다. 다른 팀에서 실력으로 SK 야구를 이기고 나면 자연히 SK도 지금과는 다른 전략을 선보일 것이다. 먹히지도 않는 오래된 작전을 언제까지 고집하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팀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주자 1, 3루시 위장스퀴즈나 만루에서 2루 견제시 3루 주자 홈스틸 등 1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SK의 플레이를 보며 이런 고급야구도 있구나 하며 그 짜릿함에 감탄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시즌중 중요할때 한번씩 써먹기 위해 스프링캠프때부터 연습하고 준비했다는 말에 또한번 감탄을 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이런 플레이가 과연 고교야구로 치부될 수 있을까. (결국 다른팀들도 나중에는 이 작전에 대비도 하고 자기들도 써먹더군.)
<SK와이번스 스프링캠프 일과(출처 : 디시인사이드 SK와이번스 갤러리)>
5.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
타팀 감독중 우승을 하거나 좋은 성적을 내도 팬들 사이에서 욕을 먹는 감독들이 많다. 작년에 기아를 우승시켰지만 올해 4강 진입에 실패한 조범현 감독이 그러하고 올해 패넌트레이스에서 2위를 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한 삼성의 선동열감독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즌내내 게시판에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의 감독에 대한 불만글이 꾸준히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얼마전 롯데의 로이스터 감독이 경질된 후 팬들 사이에서 그 사안에 대해 지금까지도 설왕설래 하고 있다.
<충격의 16연패 후 화가난 기아팬들(출처 : 엑스포츠뉴스)>
김성근 감독만큼 야구계에서 호불호가 엇갈리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KBO의 눈치를 보지않고 직언을 서슴치 않으며 여러가지 이슈를 만들어내고 한국 야구계에서 학연이나 지연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티도 많지만 팬들도 많다. 분명한 것 한가지는 김성근 감독만큼 타팀팬이 비난할지언정 소속팀 팬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감독은 없을거라는 사실이다.
내가 김성근 감독을 알게 된 것은 야구를 본 시간에 비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일흔이 다된 나이임에도 아직도 직접 펑고를 치고 특타를 지도하며 젊은 제자 감독들 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끊임없이 연구하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야구가 아닌 인생을 배우게 된다. 김성근 감독에 대해 여전히 악의적인 왜곡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를 사칭한 특정팀 팬들도 많지만 몇몇 소신있는 야구기자들의 기사를 몇년간 관심있게 보다보니 인간적으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특타지도후 직접 공을 줍는 김성근 감독(출처 : 노컷뉴스)>
한국시리즈 우승 후 바로 다음날부터 아시안 챔피언시리즈를 구상하고 내년 시즌을 준비하는 김성근 감독. 야구에 관한한 냉철하고 독하다 싶을 정도로 빈틈을 보이지 않는 그에게 존경은 커녕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본다. 한국시리즈가 SK와 김성근 감독 때문에 재미없게 되었다고 말하기 전에 다른 팀들이 그렇게 하려고 해도 못하는 우승을 위해 김성근 감독과 코칭스텝, 그리고 선수들이 흘렸을 땀을 한번쯤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무리 비난을 한다한들 자신의 신념을 꺾을 김성근 감독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다만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이제 그의 야구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후 헹가레를 받는 김성근 감독(출처 : 스포츠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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