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8년만에 다시 대통령 탄핵집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박근혜 때보다 더 흉악한 일들이 벌어져도 이상하게 탄핵의 불꽃이 타오르지 않아 대체 어떤 스모킹건이 나와야 민심이 폭발하게 될지 의문이었다.
하긴 나부터도 광화문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으니 한편으로는 어차피 경험한거 제대로 된 상황이 벌어질때 다같이 나가자라는 비슷한 생각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12월 3일.. 평소 술을 잘 안마시는데 모처럼 모임이 있어 취한 상태에서 집에 가기 위해 택시를 불렀다. 택시에 타자마자 기사님께서 계엄이 선포된거 아냐고 그러시는데 나는 뭔소리냐고 농담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왠걸 진짜 계엄이다. 2024년에 대한민국에서..
집에 돌아오니 집사람과 아들이 늦은 시간 함께 TV에서 나오는 뉴스속보를 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술기운이었지만 나는 때가 왔음을 직감했고 가족에게 선포했다.
'이번 주말에는 탄핵 집회에 나간다.'
12월 7일 토요일.
비상계엄 선포 후 맞는 첫번째 주말이다. 이미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 올라간 상황이고 표결만 남아있었다. 3시부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탄핵 집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느즈막이 아침을 먹고 12시쯤 집을 나섰다. 1시가 조금 넘어 국회의사당에 도착했다.
잠깐 팁 : 국회의사당 역사 내 화장실은 진짜 열악하다. 남자 소변기가 한칸밖에 없다. 보통 여자 화장실에 줄서는 것은 많이 봐도 남자 화장실에 줄서는 건 못보는데 왜그런가 했더니 남자 소변기가 한칸밖에 없다. 차라리 국회의사당 아랫쪽 여의도공원 공중화장실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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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공원 2호 개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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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예정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인지 인파가 아주 많이 몰린 상황은 아니었고 그때까지도 9호선 국회의사당역은 통제되지 않았다. 주변을 돌아보며 편의점이나 뭐가 있는지, 어디에 자리를 잡을지 둘러봤다.
편의점에서 김밥한줄을 사서 먹고 일단 체력을 비축했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잔 마실까 했는데 화장실 이용하는게 불편할 것 같아서 최대한 음료는 자제했다.
각종 단체에서 현수막과 깃발을 들고 속속 집결하는 것이 느껴졌고 전운(?)이 감돌았다.
3시 본집회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모였다. 주최측에서 의사당대로 말고 국회대로까지 열어줄 것을 경찰측에 요청했는데 쉽게 열리지는 않았다. 나중에 사람들이 조금씩 밀고 나가니 국회대로도 결국 열렸는데 국회대로쪽으로만 봐도 국회의사당 입구를 중심으로 대충봐도 좌우 200미터 가까이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때보다도 개인적인 체감상 더 많이 모인게 아닐까 싶었고 한편으론 이러다가 이태원 사고처럼 안전사고도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통제를 하며 사고가 안나도록 유도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소위 데모라는게 거의 사라질 무렵이라 실질적으로 데모에 참여할 기회조차 없었다. 2016년에는 진짜 촛불을 종이컵에 꽂아서 들고나왔고 LED 촛불이라는 신문물을 일부 사람들이 가져왔는데 그때와는 또다른 변화가 눈에 띄었다. 당연히 진짜 초는 거의 없고 LED 촛불보다도 가수 콘서트에 사용하는 각종 야광봉이 많았다. 무엇인들 어떠랴. 우리의 의사만 표현하면 되는 것이지.
연설보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워킹애프터유>라는 3인조 여성 락그룹이 공연을 하는데 민중가요나 투쟁가가 아닌 사람들이 잘 아는 노래를 했다는 사실이다. 지드래곤의 <삐딱하게>를 시작으로 따라부르기 쉬운 본인들 노래를 했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열광적인지 앵콜을 외쳤고 이어진 앵콜곡은 4 Non Blondes의 <What's up> 이었는데 다같이 '헤이~ 예~~' 이부분을 다 따라불렀다는 것.
언젠가 MZ 세대들이 그들만의 시위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렀다는 뉴스를 접했는데, 하긴 우리 세대도 민중가요는 잘 모르니 그들이 단합하기 위해선 그들이 잘아는, 그러나 흔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이 아닌 뭔가 의미 있는 노래로 기가막힌 선곡을 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 세대가 커서 집회를 하게 되면 무슨 노래를 부르며 할까. 혹시 그땐 Day6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를 부르지 않을까 잠시나마 생각해 보았다.
집회도 뭔가 침울하고 어둡고 진중한 분위기가 아닌 축제의 느낌도 있었다. 해학 혹은 드립의 민족 답게 재미있는 깃발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진짜 다들 얼마나 기상천외하고 재미있게 준비했는지. 그런데 그중에서도 내가 백미로 꼽은 깃발은 이거다.
이게 뭔 의미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을텐데 인터넷에 유명한 밈으로 떠도는 짤을 패러디 한 것이다.
말이 정상영업이지 저 비주얼을 보고 누가 저기 들어가서 밥을 먹겠는가. 우리나라 대한민국 정상영업 중이지만 외국에서 볼때는 저 식당처럼 보이지 않을까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다만 이 모든 원인은 윤석열 본인 자신 때문임은 분명하다.
집회 참석 팁 : 옷은 최대한 두껍께, 내복과 롱패딩 추천, 핫팩, 귀마개, 마스크, 1인용 등산 돗자리, 야광봉, 커피는 소변이 자주 마려우니 가급적 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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