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자격시험과 달리 100분씩 4교시 동안 쉴새없이 답안지를 써내려가야 하는 기술사 시험의 특성상 필기구의 선택은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기술사 이외에 논술 답안을 제출하는 시험이 고등고시 2차 시험인데 합격자의 합격수기에 어느 필기구를 썼는지까지 거론될 정도로 수험생들 사이의 관심분야 가운데 하나다.
나 역시 그동안 무수히 많은 종류의 필기구를 써왔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이거다' 하는 정도의 만족할만한 펜을 찾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나에게 맞는 펜이 어디엔가 있을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 가끔 생각날때마다 새로운 혹은 몰랐던 제품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용해보는 단계다.
비슷한 고민을 해봤던 수험생이라면 흥미롭게 느낄만한 기술사 시험용 필기구에 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공부 초창기에는 필기구의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고 학창시절부터 필기구는 사서 쓰는게 아닌 어디서 굴러다니던 것을 얻어다 혹은 주워다 쓰는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래서 그냥 단순히 공부할 때 사용하는 '전투용' 펜과 노트에 정리할 때 사용하는 'A급' 펜을 구분해서만 사용했다.
지금도 계산문제 풀이를 할때는 어디서 얻은 판촉용 볼펜이나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주로 사용한다. 가끔 젤 타입의 고가(볼펜보다 상대적인 개념)의 제품을 구하면 잘 모셔뒀다가 시험장에서 사용하는 편이다.
특이한 성향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볼펜을 끝까지 사용해서 심이 깨끗하게 비워졌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공부 중간중간 심이 얼마나 남았나 풀어서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언젠가 기술사 카페에서 합격자분이 그동안 사용한 펜심 다쓴 것을 모아서 인증하는 글을 봤는데 그정도 까지 모으지는 않고 바로바로 버리는 편이다.
- 행시 합격자가 1년 동안 사용한 펜(방송화면) -
볼펜의 단점은 무엇보다 속칭 '똥'이라 불리우는 찌꺼기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 초기에는 덜하다가 다 써갈 무렵에는 한두 단어만 써도 똥이 나올만큼 사용량에 비례한다. 상대적으로 젤타입 볼펜이 이러한 단점을 개선한 제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볼펜보다 상대적으로 덜 나올 뿐이지 역시나 찌꺼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초장기에 사용하던 시험용 볼펜은 SARARA의 Gel Ink 0.5mm이다. 우연히 한타스를 얻어서 사용해 봤는데 젤 타입이라 깔끔하긴 한데 심이 얇고 마찰력이 커서 조금만 힘을 줘서 사용하면 종이에 스크래치가 날 정도이다. 또한 심이 얇고 젤이 균일하게 나오지 않고 중간중간 끊기는 단점이 있었다.
- SARARA Gel Ink 0.5mm -
동아에서 나온 유노크(U-KNOCK) 0.7mm도 몇개 써봤는데 사라사 젤잉크 보다는 심이 굵어 글씨가 좀더 낫긴 하지만 찌꺼기가 젤타입 제품중에 많은 편이었다. 이 제품도 젤이 중간중간 끊기는 현상이 있었다.
- 동아 유노크 0.7mm -
세계 최대의 볼펜 회사인 BIC에서 나온 라운드 스틱(ROUND STIC) 1.0mm는 대학교때 친구가 쓰는걸 처음 봤는데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 가격이 비싼편이라 미국에 여행다녀오는 분들이 기념으로 한타스씩 사오거나 선물한다고 들었다.
해외직구가 보편화되면서 블랙프라이데이 처럼 초특가 세일을 할때 구입하는 인기품목 중 하나였는데 얼마전 다이소에 가보니 이 제품 세개를 묶어 천원에 파는 것도 볼 정도로 대중화 된 제품이다.
볼펜류 제품 치고는 찌꺼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게 장점인데 1.0mm지만 상대적으로 같은 1.0mm 제품에 비해 글씨가 얇게 나온다고 느껴져 기술사 시험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 BIC 라운드 스틱(ROUND STIC) 1.0mm -
유니볼 제트스트림(JETSTREAM) 0.7mm는 수험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제품중 하나이다. 필기감, 그립감이 우수하고 찌꺼기도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젤타입 볼펜 중에서도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쉽게 쓰여지기 때문에 장시간 사용하는 수험생에게 있어 손에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장점이 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가격이 비싸다.
- 유니볼 제트스트림(JETSTREAM) 0.7mm -
제트스트림 0.7mm와 거의 쌍벽을 이루는게 제트스트림 1.0mm이다. 볼펜심의 굵기는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일반적으로 같은 회사 제품군에서 큰 차이는 없다고 보여진다. 아는 토목시공기술사 중 한분이 이 제품만 사용해서 합격하셨다고 해서 두어개 사용해 봤는데 나에겐 1.0mm도 약간 얇다고 느껴져 아쉬움이 있었다. 만약 제트스트림 1.2mm가 출시된다면 그 제품을 사용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 유니볼 제트스트림(JETSTREAM) 1.0mm -
예전에 필기구에 대한 검색을 하던 중 기술사 시험은 최대한 굵은 심의 펜을 사용해야 좋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같은 내용이라도 굵기가 얇은(0.7mm 이하) 펜으로 내용을 채우는 것과 굵기가 굵은(1.2mm) 펜으로 내용을 채우는 것은 비주얼 면에서 천지차이라는 게 주장하는 사람의 요지였는데 나름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심이 굵은 펜을 알아보다 시중에 출시된 볼펜 중 가장 굵은 심을 자랑하는 파이롯트의 슈퍼 그립(SUPER GRIP) 1.6mm를 찾게 되었다. 나름 이 펜에 대한 후기가 좋아 볼펜 두자루와 리필심 다섯개를 인터넷으로 주문했는데 막상 사용해보니 글씨는 굵은게 맞는데 조금 과장을 보태 이야기 하면 글씨 반, 찌꺼기 반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난 양의 찌꺼기가 나왔고 글씨도 너무 굵어 생각만큼 비주얼이 좋지 못했다.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날 정도로 개인적으론 너무 굵어서 별로인 펜이었다. 정작 시험장에서 한번도 사용을 안해봤고 가끔 논술 연습할때 집에서 사용하는데 쓸때마다 별로라는 느낌이 강해 조금 쓰다보면 바로 싫증이 나는 그런 펜이지만 그렇다고 돈주고 산게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어쩌다 한번 쓰는 펜이다.
- 파이롯트 슈퍼 그립(SUPER GRIP) 1.6mm -
슈퍼 그립까지 사용한 뒤 나에게 1.0mm는 약간 얇고, 1.6mm는 너무 두껍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래서 혹시나 1.2mm나 1.4mm 볼펜은 없는지 검색을 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발견한게 동아 애니볼(Any Ball) 1.2mm와 1.4mm였다.
가끔 문구점같은데 가면 볼펜을 종류별로 늘어놓고 작은 종이를 붙여 시필(試筆)을 할 수 있도록 해놓는데 나름 큰 문구점을 가봐도 1.2mm 이상되는 볼펜은 찾을 수 없다. 그만큼 두꺼운 볼펜에 대한 수요가 특정한 계층 이외에는 없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큰 기대를 갖고 주문한 슈퍼 그립에 큰 실망을 한 터라 시필없이 주문을 한다는 것에 불안감이 있었지만 어쨌든 호기심 반, 기대반으로 두 제품을 한타스씩 주문했다.
볼펜이라 역시 찌꺼기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굵기는 기대했던 대로 만족스러웠다. 토목구조기술사라는 종목의 특성상 계산문제가 많은 편인데 계산문제는 1.2mm로, 논순문제는 1.4mm로 하는 것이 이상적이었다.
- 동아 애니볼(Any Ball) 1.2mm -
지금도 시험장에서 주로 사용하는 볼펜인데 여전히 100%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 손잡이 부분의 고무부분을 가운데쪽이 움푹 패이도록 설계했는데 인체공학적 설계인지는 몰라도 그 그립감이 좀 불편해서 오래 사용하면 팔이 아프다.
또한 글씨를 힘줘서 써야해서 장시간 필기를 해야하는 기술사 시험에는 팔에 무리가 갈 수 있어 그다지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한타스를 샀기 때문에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쓰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나에게 맞는 필기구를 찾는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전과는 다른 필기구에 빠지게 되어 현재도 진행중인데 그 이야기는 조만간 후속편에서 쓸 예정이다.
'토목구조기술사 도전기 > 뒷담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2차 면접 후기 (6) | 2019.04.22 |
---|---|
봄이 왔다. (14) | 2019.03.08 |
토목구조기술사 111회 후기 (2) | 2018.02.05 |
기술사 답안작성시 변경사항 (0) | 2018.02.05 |
기술사 총인원 확대? (0) | 2018.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