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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

턴키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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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담당하고 있는 해상교량공사를 설계·시공일괄입찰(이하 "턴키"라고 한다)로 발주해서 착공까지 마무리하였다. 약 1년 동안 정신없던 것들이 마무리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느끼게 된 턴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발주청 시설직(이라 쓰고 토목직이라 읽는다) 직원의 입장에서 턴키공사를 경험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아마 전체 인원을 100이라 했을때 99는 퇴직할 때까지 경험하지 못할 업무라고 하겠다. 물론 지방자치단체라는 한계(?)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턴키공사와 같은 대형공사를 경험한다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런 점에서는 분명 좋은 경험이었다.

확실히 일반공사와 달리 턴키공사는 행정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까다롭다. 입찰안내서 심의, 계약심사, 조달청 협의, 기본설계 적격심의 등등 주변에 자문을 구하기도 어렵고 추가적인 절차가 많아 규정을 일일이 찾아가며 하나하나 짚어나가야 한다.

거기에 건설사업관리용역(이하 "감리"라고 한다)을 별도로 발주해야 하는데 턴키공사에 대한 감리다 보니 금액이 커서 일반적인 PQ(사업수행능력평가) 방식이 아닌 PQ에 SOQ(기술인평가) 방식의 병행을 해야한다.

게다가 얼마전 건설기술 진흥법이 개정되어 감리용역 발주 전 건설사업관리계획을 별도로 수립해야 하는데 시작된지 얼마 안된 제도라 사례가 드물어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하는 것이 어려웠고, 건설사업관리계획에 대한 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와 SOQ에 대한 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 등 감리용역 발주 전 두번의 건설기술심의와 계약심사위원회 심의까지 총 세번의 심의를 받았다.

기본설계 혹은 기본 및 실시설계 등 별도의 설계용역이 있다면 이러한 심의는 용역업체에서 충분한 서포트를 해줄 수 있지만, 턴키공사의 특성상 낙찰자 선정까지 용역업체가 없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심의자료를 작성하고 외부 심의위원에 대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착공시기가 정해져 그 기한에 맞춰 거꾸로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길 수 밖에 없었다.

힘들었던 감리용역 업체선정 과정에서 그나마 조금 편하게 했다라고 한다면 규모가 큰(SOQ를 수반하는) 건이다 보니 입찰에 참가하는 업체가 메이저(?)급으로 제한되어 서류검토 시간이 대폭 단축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근무하는 부서(사업소)에서 2년정도 있으면서 턴키공사를 맡기 전까지 실시설계용역 발주를 2건이나 했는데 둘다 PQ 방식으로 추진하는 용역으로 각각 20여개 업체가 참여해서 업체별로 A4박스 한개 분량의 제출서류를 검토하는데만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여서 했던걸 생각하면 5개 업체만 참여한 PQ 서류검토는 그야말로 '껌'이었다. 다만 SOQ를 위해 위원을 선정하고 위원회를 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서류검토와는 또다른 압박과 스트레스였지만 말이다.

턴키공사의 기본설계 적격심의를 지켜보는 과정은 나름 흥미가 있었다. 2개 업체가 참여하는 바람에 1:1의 진검승부를 보는 것도 그렇고 각자 자신의 컨셉을 구상하고 그에 맞춰 설계를 해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지략싸움도 그렇고, 설계도서 제출 후 적격심의까지 상대방의 서류를 검토하고 약점을 파고든 질문과 답변의 공방전 또한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긴장감의 연속이었겠으나 관전자 입장에서는 꿀잼의 요소였다.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기에 좀더 우위에 있는 업체가 결국 설계점수를 높게 받고 최종 낙찰자 및 실시설계 적격자로 선정되는 걸 보니 사람의 보는 눈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시공분 공사를 착공하면서 높으신 분들 초청해서 코로나 시국임에도 착공식까지 개최하고 여러 뉴스와 신문 지면을 통해 알려지니 주변에서 큰일했다고 격려의 말씀도 해주시고 일면식도 없는 시민분들이 감사하다고 전화도 주시고 해서 착공식 준비 과정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가 어느정도 해소되었다.

보통 이쪽은 공사담당자가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에 한번씩 순환보직 발령이 나서 어떤 공사는 준공까지 담당자가 10명 가까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조금 특별한 케이스로 이 공사 준공할때까지 말뚝(?) 근무를 하게 되어 정말 공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할 운명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생각지도 못한 큰 공사를 담당하는 것도 그렇고 계속 이 공사만 담당하게 되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토목구조기술사 취득 이후 벌어진 일들이라 사람 앞일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턴키공사는 두번 다시 맡고 싶지 않을만큼 준비 과정이 너무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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