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캠핑

누구나 로망은 있다.

개살구 2018. 2. 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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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8. 16.)



모든 사람이라면 가슴속에 한가지씩의 로망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남자라면 자동차에 대한 로망, 여자라면 명품 옷이나 가방에 대한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고.


뭔가를 원하면서도 이러저러한 이유로 당장은 이룰수 없는, 그렇다고 완전히 실현 불가능한 공상과 같은 이야기는 아니면서도 막상 하기도 쉽지 않은 이 로망이라는 것은 무료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게 만드는 신기루와 같은 달콤한 유혹이다.


중학교 2학년때 친한 친구들과 우연히 통기타를 배우게 되었는데 그 매력에 푹빠져 레코드 가게에서 파는 악보를 사다가 연습하고 합주하며 그룹을 결성, 교내 장기자랑 대회에까지 나가 입상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학원이나 전문가를 통해 배운게 아니라 고만고만한 애들끼리 책을 보고 독학하는 수준이어서 간단한 악보는 연주가 가능했지만 하이코드가 난무하는 좀 어려운 곡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그리고 말이 그룹이지 통기타 몇대에 피아노를 칠줄 아는 친구가 연주하는 키보드 하나가 결합된 그룹이라는 말이 창피할 정도의, 말그대로 애들 장난 수준이었으니 당시 유행하던 국내외의 유명한 그룹사운드는 우리들에게 동경이자 이상향이었다.


중3이 되었을때 학기초 우리반으로 전학온 친구가 한명 있었는데 우연히 이 녀석이 드럼을 칠줄 안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 그룹으로 영입, 명실공히 구색과 무늬를 갖춘 그룹으로 탈바꿈 하였다. 그런데 드럼을 치고 다같이 합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멤버중 한명이 다니던 교회에서 드럼을 빌려서 칠수 있다는 소식에 나머지 멤버들은 신앙심없이 오로지 합주를 위해 나일롱 신자가 되었다.


드럼의 위력이란 가히 폭발적이었다. 심장을 울리던 베이스 드럼과 탐탐의 북소리가 결합된 우리의 합주는 마치 기타치는 내가 지미 핸드릭스가 되고 우리 그룹은 본조비나 건스앤로지스가 된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얼마후 교회에서 한학년 아래의 여학생 몇명이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의, 아니 나의 인기를 실감하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추스르기도 전 그 여학생들은 내가 아닌 드럼을 치는 친구를 찾아왔음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런데 그 드럼을 치던 친구는 우리 멤버중 가장 키가 작았고 얼굴도 가장 못생겼었다. 그때 느꼈던 박탈감과 상실감이란.. 그리고 그때 결심을 했다. 앞으로 나도 꼭 드.럼.을.배.우.고.야.말.겠.다.고.


커다란 드럼앞에 앉아 현란하게 스틱을 휘두르고 두 발을 굴러가며 드럼을 치는 모습은 그때부터 나에게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그 후 대학교에 합격하고 난뒤 고등학교의 마지막 겨울방학, 엄마를 졸라 드럼학원에 등록을 했다. 비로소 드럼을 연주하는 나의 로망이 실현되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다른 악기와 달리 드럼은 처음 배우는 사람이 바로 그걸 연주하며 배우는게 아니라 나무로 만든 판 끝에 고무로 덧댄 것을 반복적으로 두들기며 박자 연습하는 것을 한달간 하고 정작 드럼앞에 앉는 것은 최소 6개월이 지나야 가능하다고 했다.


게다가 같이 학원을 다니기로 약속한 친구가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를 결심하는 바람에 그마저도 흥이 사라지고 재미가 없어 어영부영 한달을 다니고 그만두게 되었다. 하지만 드럼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내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어 기술사를 딴다면 이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이 집앞의 드럼학원에 등록해서 다시 드럼을 배우는 것이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대부분의 로망이 유년시절의 추억이나 경험과 관련된 것이기에 가급적 다양한 경험과 체험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아들에게도 그런 기회를 많이 부여해주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부터 홈쇼핑에서 오토캠핑 장비를 파는 것을 보았는데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갔던 캠핑이나 동네 잔디밭에서 형과 여름마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 놀던 기억이 떠올라 유심히 지켜보게 되었다.


예전에 캠핑이라 하면 계곡이나 산에서 한여름에만 즐기던 피서에서 전체적으로 생활이 풍요로워져 언제부턴가 펜션이나 콘도에 밀려 시들해졌다가 몇년전부터 오토캠핑이라는 이름으로 장비도 고급스러워지고 과거와는 달라진 형태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에 잠자던 유년시절의 로망이 떠올라 한마디로 꽂히게 되었다.


일반적인 취미와는 달리 본인 혼자 즐기는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할 수 있고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가 자연체험과 여러가지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점이 많아 마눌님과 상의끝에 올해부터 우리 가족도 오토캠핑의 대열에 합류하기로 결정, 상당기간 알아보고 장비를 구입하여 마침내 지난 주말 처녀캠핑을 다녀왔다.


비록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다가 많은 장비들을 옮기는 것과 설치하는 것, 그리고 철수와 집에 와서 정리하는 것까지 진이 빠질정도로 힘이 들었지만 그 모든것을 상쇄하고도 남을만큼 매력이 있었다. 아들도 좋아하고 마눌님도 좋아하니 금상첨화인 것은 당연지사고.


어린시절의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데다 요즘은 장비가 워낙 좋아서 그시절보다 훨씬 편하게 즐기면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물론 장비구입에 대한 자금의 압박은 옥의 티가 아닌 티의 옥이지만 초기비용 이외에는 추가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계획적으로 절제하며 지름신을 강림시키면 충분히 해볼만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아무튼 돌아온 날 저녁부터 다음 캠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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