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백기완 선생님을 추모하며

개살구 2021. 2. 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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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된 것은 1987년 대통령 선거에 민중후보로 출마하셨을 때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의 꼬꼬마였는데 길거리에 나붙은 대통령 선거 포스터를 보다가 다른 후보들과 달리 선생님의 상징과도 같은 두루마기를 입고 계신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에 유력 후보가 아니었음에도 기억에 남는다.

 

특히 선거 포스터에 적힌 학력사항에 '독학'이라는 두글자만 씌여진 것이 당시 철없던 내 생각으로는 너무 우스꽝스러워 친구와 함께 박장대소를 했던 못난 과거가 있음을 또한 고백한다.

 

고등학교 1학년때 담임 선생님께 민중가요인 <님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면서 이 노래의 작사를 선생님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도 솔직히 큰 감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이후 내 기억에서 선생님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성인이 되고 2003년경 우연히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사람찾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신 방송을 너무도 인상깊게 본 기억이 난다. 그 프로그램은 보통 연예인 위주로 출연을 했더랬는데 선생님이 출연하신 것도 의외였지만 나와서 하시는 말씀이 하나하나 주옥같았다.

 

독립운동가이신 김구 선생님과의 일화, 김구 선생님이 들려주셨다는 서산대사의 한시 등등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 정도다.(정작 선생님이 누구를 찾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평소 감정기복이 크게 변하지 않고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나지만 그 방송을 보고 눈물을 찔끔 흘렸을 정도로 감명깊었다.

 

그 이후 선생님에 대해 좀더 알아보고자 저서를 구해서 읽게 되었는데 당시에도 이미 절판된 책들이 많아 새책을 구하긴 어려웠고 중고서점 등을 뒤져 몇권 사서 읽게 되었다.

 

 

 

 

어제 선생님이 향년 89세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집에서 책장을 훑어보니 총 여섯권의 책이 나왔다. 선생님 책의 특징이라면 한자로 된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고, 순 우리말과 고어(古語)를 적재적소에 잘 쓰신다는 점이다.

 

특별한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지식의 사유와 깊이는 그 누구보다 뛰어나신 분이다. 특히나 한평생을 민중운동과 통일운동에 전념하면서 신념을 잃지 않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그 선두에 함께하신 인생여정은 감히 일반인이 흉내낼 수조차 없는 성인(聖人)이나 구도자의 길을 가신 것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아무튼 평생 고난의 길을 걸어오신 선생님의 명복을 빌며 그곳에서 고통없이 편히 쉬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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