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살구 2019. 3. 8.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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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모든게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모든게 틀어질까봐. 아침밥을 차리면서 수저통에 있는 젓가락을 집어들었을 때 한번에 두개가 잡히지 않아 잠시 당황을 했고, 시금치 반찬을 식탁에 흘렸을때 뭔가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와 인사를 나누고 집을 나서는데 합격을 하든, 떨어지든 연락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떨어져도..?"

"응.. 떨어져도 연락줘.."

"그...래.."



출근길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보는데 카톡 알림이 떴다. 얼른 확인해보니 그제 주문한 제품의 발송을 알리는 카톡 문자였다. 


'합격을 하면 공단에서 알림문자를 보낸다는데....'


알림문자의 발송시간을 알 수 없으니 시간이 지나도 소식이 없는 핸드폰을 보며 또 떨어진건가 하는 익숙한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불합격.. 매번 일상처럼 나를 찾아오는 단어지만 이번 만큼은, 그래 제발 이번 만큼은 그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았고 뭔가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보고 싶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는 사실을 여러번 경험했기에 이번에도 또 떨어진다면 이 여파가 상당하리라는 사실은 내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알고 있었다.


'또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되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항상 그랬건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노력했고 도전했다. 내 행위(노력)에 비해 과분한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으나 돌이켜보면 '합격'이라는 그 알림문자 하나 정도 받는 것은 '정당한' 바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또 불합격일 경우 그건 나의 착각 내지는 자위에 불과하다는 절망감도 동시에 느껴졌다.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한국산업인력공단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현재시간 오전 8시 50분. 아직까지 알림문자가 없는걸 보니 이번에도 또 그런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조심스럽게 '시험결과 확인'을 클릭하니 발표중인 시험이 없다는 메세지가 뜬다. 


'아... 9시에 발표하는거지..'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사무실 출근시에 하는 익숙한 루틴으로 하루 일과를 준비했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9시가 넘었을 것 같다.


익숙한 카톡 알림음.


'.......!!'





엄청나게 기쁠줄 알았던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왔으나 막상 덤덤했다. 아직 2차 면접시험이 남아서일까? 아님 내 실력보다 운이 따른 결과 때문일까? 아내에게 카톡으로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으나 채팅창의 '1'이라는 숫자는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출근해서 바쁘겠지...'


잠시 후 전혀 생각지 못했던 분께 연락이 왔다. 조심스럽게 내 합격여부를 묻는 카톡 메세지였다. 토목구조기술사 공부를 하며 블로그 등을 통해 알게된,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분이지만 누구보다 내 합격을 바랐던 고마운 분이다.


이야기를 하며 축하를 받다보니 어느새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점점 '기쁨'이라는 단어로 치환이 되어감을 느낀다. 


마치 북반구의 기나긴 겨울, 인고의 세월을 지나 큰 산 하나를 넘고 봄이 찾아와 꽃봉우리에 꽃망울이 맺힌 기분이다. 꽃이 피었으니 열매를 맺을 날이 머지 않았음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남들보다 길었던 어둠 속 터널의 여정에 희미하게 나마 출구의 여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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