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개살구 2018. 2. 7. 14:52
반응형

(2015. 12. 18.)



2000년 초반 군대에서 제대하고 복학하여 이제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살짜쿵 깊어질 무렵, IMF의 여파로 대학 간판이 더이상 취업의 보증수표가 아니게 된 세상에서 소위 스펙쌓기의 기본 중 기본이라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읽었던 책의 제목은 그때나 지금이나 참 선정적(?)이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서 모국어(Mother Tongue)를 배우듯 주어니 서술어니 복잡한 문법따위 집어치우고 그냥 반복적으로 들으면 영어를 저절로 깨우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고 실상 그 논리에 어느정도 공감을 해서 테이프도 구해서 꾸준히 들었던 것 같은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테잎 도입부에 흘러나오는 Sixpence none the richer의 Kiss me 밖엔 떠오르는 것이 없다.



얼추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난 이야기를 뜬금없이 꺼낸 이유는 애청중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카페>에서 이번주 주제인 '로봇의 시대가 왔다'를 듣다가 우연히 번역기와 관련된 내용에서 아주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기 떄문이다.


고등학교 때였나? 386 시절 번역프로그램이라는, 당시로서는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우연한 기회에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해 컴퓨터에 깔고나서 테스트삼아 몇가지를 해본뒤 받은 실망감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문장의 영어를 입력한 뒤 한글로 번역을 해보면 이게 말인지 막걸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결과물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다.


2010년 여름, 나는 아직 2G폰을 사용하던 시절이었는데 여름휴가로 일본 오사카 자유여행을 다녀왔었다.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독일어로 배운탓에 아는 일본어라고는 간단한 인사 몇마디가 전부인 상태에서 한자를 조금 읽을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사전에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구한 뒤 호기롭게 자유여행을 떠났다.


대부분 코스와 일정이 미리 준비해간 대로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으나 야경을 보기 위해 우메다 공중정원을 찾아갈 때 문제가 생겼다. 분명 가라는 대로 갔는데도 도저히 찾을수가 없어 결국 지나가는 현지인에게 안내책자에 나온 우메다 공중정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디랭귀지로 어딘지 알려달라고 하니 그 젊은 남자가 아이폰을 꺼내더니 뭘 입력하고 나서 화면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그 현지인이 일본어로 친 내용이 "지하차도를 통과해 우측으로 꺾어지라"는 한국말로 번역되어 있었다. 고마운 그분께 연신 아리가또라 말하며 진심어린 감사를 통해 우메다 공중정원을 무사히 찾아갔고 그 이후 이제 영어공부에 더이상 목메지 않아도 되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2년전부터 웹 브라우저를 익스플로러에서 크롬으로 바꾼뒤 일본 라쿠텐을 통해 직구도 몇번 해보고 중국 타오바오도 들어가보고 순식간에 자동번역되어 나오는 결과물을 통해 비록 매끄러운 번역은 아닐지라도 어느정도 의미가 통하고 제한적이나마 의사소통이 가능한 현실을 마주하니 참 세상 좋아졌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과거의 번역기는 성문영어처럼 문법에 근거한 번역을 해왔다면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번역은 빅데이터에 기반한 실제 언어 습득과정과 동일한 빈도수, 상황에 따른 번역으로 가고 있다니 데이터가 더 쌓이고 기술이 발전하면 완전한 즉시번역의 때도 머지 않은것 같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겠지만 기술의 발달로 시나브로 새로운 현실은 우리앞에 다가왔고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 만큼은 확실하다. 정말로 온국민이 영어(외국어)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비정상적으로 그것에 올인하며 스트레스 받는 것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릴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않'아도 되는 때가 금방 오지 않을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