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과 그리움
(2012. 1. 3.)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신 까닭에 유치원에 갔다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없을때가 많았다. 한번은 문이 잠긴상태로 열쇠마저 없어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되자 알 수 없는 서러움에 온 동네를 울면서 엄마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런 내가 딱했는지 낯모르는 이웃집 아주머니께서 날 불러 산도와 요구르트를 주시며 엄마가 올때까지 나를 달래주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교때는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들어가 형광등을 켜는게 싫어서 학교가 끝나도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우산을 챙겨가지 않은날 하교시간에 갑작스럽게 비라도 내리는 날엔 엄마들이 학교로 우산을 갖고 마중나오는게 참 부러웠다.
그런 이유때문에 그맘때부터 나는 입버릇처럼 나중에 커서 결혼을 하게 되면 꼭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와 결혼하겠노라고 생각했고 엄마에게도 그런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철부지 막내 아들의 말씀을 듣는 엄마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셨고...
어느덧 나이를 먹고 결혼 6년차가 되어버린 지금, 그때의 내 바람과는 달리 현실적 이유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보통의 직장인이 외벌이로 처자식을 먹여살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깨닫고 맞벌이로 생활하고 있기에 철없던 그시절 엄마에게 했던 말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나 가끔 생각하게 된다.
결혼후 아이를 낳고 여러가지 사정때문에 아이를 돌보며 맞벌이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아들의 돌이 지나고 와이프가 회사로 복직할 무렵부터 주중에는 처가집에서 장모님이 봐주시고 주말에만 우리집으로 데려오는 생활을 몇년째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 말은 못해도 엄마와 아빠의 얼굴은 이미 알고 있는터라 주말 저녁 외가집에 데려다주고 나올때면 떨어지는게 싫었는지 울면서 보챘고 좀더 커서 말을 할 무렵부터는 금요일 저녁 퇴근후 데려오려면 외할머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고, 일요일 저녁 데려다주고 가면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싫다고 우는 사태가 벌어졌다.
어린 녀석에게 사랑이라는 감정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알려주기도 전에 그리움이라는 감정과 헤어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먼저 알려준 셈이니 한동안 주말마다 벌어진 이별은 아들에게도, 또 어른에게도 참 할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는 그런 상황에 익숙해진건지 언젠가부터 손을 흔들며 씩씩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는데 간혹 슬픈 음악을 듣거나 무슨 연유인지 보고픈 사람이 생각날 때는 혼자 훌쩍거릴때도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난주 장모님께서 갑작스럽게 오른손을 다치셔서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까지 하게되자 당장 아이를 맡길곳이 없어 일단 우리 본가에서 아버지가 낮에 혼자 봐주시고 나와 엄마가 퇴근후 같이 보는걸로 해서 일주일 정도만 본가에 가서 생활하기로 했다.
원래 아들이 낯선 곳에서 잠자리를 좀 가리고 외가집이나 우리집 말고 다른곳에 맡겨본 적이 없는데다 아버지 혼자서 손자를 보게 하니 부득이 며칠만이라지만 일단 나부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간 당연시 여겼던 장모님에 대한 새삼스러운 고마움은 말할 것도 없었고...
다행이 새해를 맞아 다섯살이 된 아들이 현재의 상황이 어떻고 본인이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가 눈치를 챈건지 할아버지에게 떼도 안쓰고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적응을 잘해서 일단 한시름을 놓았는데 지난 주말 우리집에서 보내고 일요일 저녁 나와 단둘이 할머니네로 가게되자 할머니집에 안갈거라며 할머니집 앞에서 대성통곡을 하며 엄마를 찾아댔다.
간신히 어르고 달래 본가에 들어갔는데 막상 할머니집에서는 본인 스스로 슬픔을 억누르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젓한 모습을 보이니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
어제 저녁 잠자리에 들무렵 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우연히 예전에 찍어둔 엄마와 본인의 사진을 보더니 갑자기 엄마가 생각났는지 10분 넘게 그 사진만 들여다보며 훌쩍거리길래 엄마가 보고싶어 그러는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계속 슬픔을 억누르며 눈물을 훔쳤다.
이제 잘시간이니 핸드폰 그만 만지고 자야된다고 하니 끝까지 핸드폰을 주지 않다가 결국 울음을 떠뜨렸는데 아무리 아빠라 해도 아이에겐 채워줄 수 없는 엄마의 그 무엇 때문인지 달래지지 않고 한참을 울다 지쳐 눈이 퉁퉁 부운채로 잠이 들었다.
어린 것이 얼마나 엄마가 보고싶었으면 티도 안내다가 그렇게 울었겠냐며 지켜보던 부모님이나 내 마음이나 참 딱해 잠이 쉽게 들지 않았다. 예전부터 엄마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게 애미없는 애들'이라는 말이 문득 머리속을 맴돌았고 어린시절 내가 느꼈을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그 시절의 나보다 더 어린때부터 느끼는 아들을 보니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차피 인간의 모든 만남이란 헤어짐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만나면 헤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거늘 우리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나중에 알았으면 했던 헤어짐과 그리움의 감정을 저 어린녀석에게 누구보다 먼저 알려준 나는 참 나쁜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