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나는 누구인가

개살구 2018. 2. 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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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7.)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아마도 유치원 시절부터 인간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것이며 내가 죽으면 이 세상은 어떻게 변화되는지가 궁금했다. 내 육신이 죽는 것도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항상 끊임없이 생각하며 사고하는 정신이 없어진다는 것은 풀 수 없는 난제였다.


물론 당시의 이러한 고민은 3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에도 해답을 찾지 못하고 가끔씩 어린시절 그때를 떠올리며 좀 거창하게 말해 니체와 같이 실존주의 사상을 일찌감치 고민했구나 하며 자화자찬을 하거나 종교적 절대자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생각했으니 답이 나올리 없었겠지 싶다.


존재란 무엇이며 실존이란 무엇인가. 참으로 어려운 철학적 질문이다. 철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뭔가 고답적이고 현학적인 냄새가 나서 거부감부터 드는데 하물며 존재와 실존이라니. 그런데 요며칠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맴도는 생각중에 하나는 그러한 실존문제와 연관이 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인 질문이다.


며칠전에 있었던 일이다. 사무실 상사분과 둘이서 출장을 가는데 차에서 나를 가리켜 '먼저 말을 걸기전에 절대 먼저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말에 그냥 '그런가요?' 하면서 웃고 넘겼는데 그때부터 과연 나는 정말 그런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실 나는 말이 많으면서도 없는 사람이다. 이건 무슨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소리지만 사실이다. 평소 사무실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특히나 먼저 나서서 대화를 주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런 행동은 낯선 사람들 속에 혼자 있거나 별로 친하지 않는 사람들과 있는 경우 극에 달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낯설고 뻘쭘한 자리에 있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하지만 친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선 그 반대가 되어버린다. 대화를 주도할때가 많고 말하다가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져 지적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나보고 물에 빠지면 입만 둥둥 뜰거라고 말하는 친구들까지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물론 술이 조금 들어가면 상황에 관계없이 말이 술술 나오기는 하지만 이건 맨정신이 아니니 통과.)


어쩜 이렇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중 어느 것이 진짜 나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고. 이런 양극화(?) 현상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나아지는게 아니라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다른 사람의 속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는 유행가 가사의 한구절처럼 나자신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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