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

농장지경(弄璋之慶)

개살구 2018. 2. 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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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2. 21.)



축복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결혼을 하고 2세를 갖기로 한 즈음 한동안 소식이 없었는데 엄마의 사무실 동료가 임신했다는 소리를 듣고 우리도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약국에서 사온 테스터기의 선명한 붉은색 두줄은 엄마 아빠에게 축복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준 메세지였지.





임신이라는 너무도 신기하고 기쁜 마음에 아빠는 그 새벽에 폰카로 축복이의 메세지를 찍어놓았고 이제와 다시 보니 그 날짜가 지난 5월 7일 오전 여섯시 오십칠분 이더구나.


그날 오후 엄마는 사무실 출근후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산부인과에 다녀와 임신 5주라는 통보를 받았고 그주 토요일 너의 외가댁이 있는 부천에 와서 아빠와 함께간 병원에서 초음파로 처음본 축복이의 모습은 난황(卵黃)이라는 자그마한 타원이였어. 


 



엄마 아빠는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하늘이 엄마 아빠에게 준 축복이라는 의미로 너의 태명을 '축복'으로 지었고 병원에 가서 점점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커가는 모습을 보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단다.


처음으로 축복이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었을 때, 입체 초음파로 좀더 선명한 너의 얼굴 윤곽을 보았을 때의 그 신기함이란..


아빠의 집안에 워낙 딸이 귀한 관계로 아빠 뿐만 아니라 친가, 외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두 축복이가 딸이길 바라셨는데 12주를 넘겼을 땐가? 의사선생님께서 축복이의 성별이 남자라고 귀뜸해 주셨을 때 아빠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었어.


25주째 두번째 입체초음파를 찍을때 내내 잘놀다가 사진을 찍는 순간 얼굴을 가린 너의 모습에 의사선생님은 <뭉크의 절규>라는 그림이 생각난다며 웃으셨는데 그 이후로 엄마 아빠는 그 사진의 제목을 <축복이의 절규>라고 이름붙였어. ㅎㅎ



 


우리 축복이가 첫 아이라 신경이 많이 쓰였지만 정작 엄마가 직장에 다니고 민원인들을 상대하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업무라 피곤하거나 힘들어도 쉬지 못하고 태교다운 태교도 제대로 못해줘서 늘 안쓰러웠단다.


30주가 넘어가도 여전히 역아(逆兒)로 있어서 제대로 돌아오겠지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태동이 엄마의 아랫배 쪽에서 느껴져서 어쩔수 없이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엄마나 아빠도 서서히 하게되었고 결국 초심을 잃지않은 너의 굳은 지조(?) 덕분에 제왕절개로 분만을 하게 되었단다. 


다른 사람들은 출산후보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그래도 좋을때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해주었지만 그래도 엄마와 아빠는 누가뭐래도 축복이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서 하루빨리 보고 싶었던게 사실이었어.


이번달 초에 갑자기 엄마가 진통을 해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이 조금 열려있어 입원을 하게 되었고 회사는 더이상 나가면 안된다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에 따라 예정보다 한참 앞당겨 엄마는 출산휴가를 내고 축복이의 외가댁이 있는 부천으로 오게 되었어.


그 후 출산예정일인 2009년 1월 8일보다 2주 가량 앞당겨 크리스마스 이브 오전으로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엄마 아빠가 빨리 보고 싶었는지 지난 12월 16일  오후 다섯시 삼십사분 니가 드디어 이 세상에 나왔구나.


갑작스러운 수술 소식에 아빠는 사무실 일을 접어두고 병원으로 오게 되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었는지 그날 회식으로 인해 아침에 차를 두고 가게되어 버스타고, 지하철타고, 다시 택시타고 자가용의 곱절의 시간이 걸려 병원에 도착했는데 그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더구나 아빠가 도착하자 축복이는 이미 세상에 나온 뒤라는 외할머니 말씀에 너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주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하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하더구나.


잠시후 신생아실의 창문 너머로 간호사가 안고 있는 너를 처음 본 순간 신기하게도 한쪽 눈을 떠서 똘망똘망하게 바라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2.8kg이라는 다소 작은 체구로 나온 네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그 조그만 모습에 갖출것은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어.



 


이제 축복이가 세상에 나왔으니 더이상 축복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구나. 엄마와 상의한 끝에 갖출 해(該)자에 선비 언(彦)자를 써서 구해언(丘該彦)으로 하기로 했단다.

 


누구보다 겁이 많고 걱정 많은 엄마와, 아직은 모든게 서툴기만 한 초보 아빠라 해언이를 잘 키울수 있을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너도 조금씩 성장할 것이고 엄마 아빠도 나아질 것이기에 다른것 다 필요없고 해언이가 엄마젖 많이 많이 먹고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좋겠어. 


솔직히 해언이가 엄마 뱃속에서 지내는 9개월 남짓 너를 항상 품고 생활하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내 새끼가 있다는 사실이 피부에 와닿지 않았지만 해언이를 출산하고 며칠 키우다 보니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표현과 자식을 낳아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옛사람들의 말이 정말 실감나는구나.


해언아!


니가 이 세상에 나와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인연으로 만나 새식구가 된 것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단다. 앞으로 너로 인해 울고 웃게 될것이고 너를 키우며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너라는 존재만으로도 엄마 아빠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께. 엄마 아빠의 가슴이 터질정도로 너무너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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